조회수
3255
최근 트로트 오디션이 붐을 이루면서 중장년층의 음악영역이었던 트로트가 젊은 세대로까지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국민MC로 불리우는 유재석은 유산슬이라는 예명으로 신인상을 받는가하면, 트로트 오디션 출신의 송가인이라는 하나의 신드롬이 형성되고 있고,
'나는 가수다'의 트롯 버전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와 각종 오디션까지 지금 현재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트로트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로트(또는 트롯, Trot)는 기본적으로는 191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댄스리듬인 폭스 트로트(Fox Trot)에 기반한다.
여기에 일본의 전통음악의 오음계(미야코부시)와 가사가 트로트 리듬과 합쳐져서 엔카(연가)가 대중음악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고,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의 가수들이 일본의 레코드사를 통해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음반을 발표하게 되면서 트로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엔카의 시초로 보는 고가 마사오의 1931년 발표곡 '사케'와 '나미타까 타메이키까'가 발표되기 한 해 전에
윤심덕의 '사의 찬미', '낙화유수'등이 음반을 냈다는 점에서 트로트가 하나의 대중음악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한국와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후 1930년대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초창기 트로트 시대의 대표곡 들이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는 현인의 '신라의 달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가 풍의 '전우여 잘 있거라',
신세영의 '전선야곡'이 크게 유행하였고 휴전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등이 크게 히트하였다. 이 곡은 최근 송가인이 트로트 열풍을 낳게 한 결정적인 곡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는 트로트가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은 전성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미자, 최희준, 김상희 등의
전설적 가수들이 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최초의 한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권에서도 국제적으로 유행하였다. 물론 이 시대의 주인공은 남진과 나훈아다.
한국의 탐 존스라 불리우는 남진은 팝스타일의 빠른 템포의 트로트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 데뷔를 하였고,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국민가수로 불리우는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선보이며 두 가수의 양강 체제를 구축하였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나훈아의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등이 대표곡이며,
문주란 '동숙의 노래', '공항의 이별'등도 이 시대의 대표곡 들이다.
70년대 중후반 마이너리티이긴 하지만 포크송, 통기타 가수, 그룹사운드가 태동하면서 트로트 시대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고고와 디스크 리듬이 팝음악의 대세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도 트로트에서
락, 밴드, 댄스음악으로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를 이끈 건 가왕으로 불리우는 조용필, Rock의 대부 신중현, 최헌 등이었다.
사실 80년대 이후 90년대에는 트로트가 대중음악을 주류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80년대의 심수봉, 김수희, 주현미, 문희옥, 현철, 설운도, 태진아 등 트로트 명맥을 이어갈수 있는
걸출한 스타들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트로트는 하나의 리듬이나 장르가 아닌
성인음악(Adult Contemporary)의 카테고리로 자리잡는데 만족해야 했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랩과 힙합, R&B, 발라드, 댄스 음악이 한국 가요계를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트로트는 더욱 침체기를 맞게 되었는데 2004년 장윤정이 '어머나'로 신세대 트로트 붐을 일으키면서
트로트는 중장년 층의 전유물이 아닌 하나의 대중음악 분야로서 다시 전면에 서게 된다.
2005년 박상철의 '무조건', 2006년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2009년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등이 트로트의 르네상스를 이끄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90년대 H.O.T와 젝스키스 팬덤보다 더 치열했던 70년대 남진, 나훈아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았던 트로트의 시대가
2020년대에 부활했다. 그것도 특정 세대, 계층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고 음악적 장르의 형태도 정통 트로트부터
Rock 스타일, 랩 힙합스타일, 심지어 EDM까지 믹스된 퓨전 트로트의 형태로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계의 주류에 자리를 잡듯이
한국의 트로트도 소수의 문화가 아닌 새로운 한류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게 될 날을 머지 않은 미래에
보게 될지도 모르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국민MC로 불리우는 유재석은 유산슬이라는 예명으로 신인상을 받는가하면, 트로트 오디션 출신의 송가인이라는 하나의 신드롬이 형성되고 있고,
'나는 가수다'의 트롯 버전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와 각종 오디션까지 지금 현재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트로트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로트(또는 트롯, Trot)는 기본적으로는 191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댄스리듬인 폭스 트로트(Fox Trot)에 기반한다.
여기에 일본의 전통음악의 오음계(미야코부시)와 가사가 트로트 리듬과 합쳐져서 엔카(연가)가 대중음악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고,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의 가수들이 일본의 레코드사를 통해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음반을 발표하게 되면서 트로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엔카의 시초로 보는 고가 마사오의 1931년 발표곡 '사케'와 '나미타까 타메이키까'가 발표되기 한 해 전에
윤심덕의 '사의 찬미', '낙화유수'등이 음반을 냈다는 점에서 트로트가 하나의 대중음악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한국와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후 1930년대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초창기 트로트 시대의 대표곡 들이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는 현인의 '신라의 달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가 풍의 '전우여 잘 있거라',
신세영의 '전선야곡'이 크게 유행하였고 휴전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등이 크게 히트하였다. 이 곡은 최근 송가인이 트로트 열풍을 낳게 한 결정적인 곡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는 트로트가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은 전성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미자, 최희준, 김상희 등의
전설적 가수들이 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최초의 한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권에서도 국제적으로 유행하였다. 물론 이 시대의 주인공은 남진과 나훈아다.
한국의 탐 존스라 불리우는 남진은 팝스타일의 빠른 템포의 트로트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 데뷔를 하였고,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국민가수로 불리우는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선보이며 두 가수의 양강 체제를 구축하였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나훈아의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등이 대표곡이며,
문주란 '동숙의 노래', '공항의 이별'등도 이 시대의 대표곡 들이다.
70년대 중후반 마이너리티이긴 하지만 포크송, 통기타 가수, 그룹사운드가 태동하면서 트로트 시대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고고와 디스크 리듬이 팝음악의 대세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도 트로트에서
락, 밴드, 댄스음악으로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를 이끈 건 가왕으로 불리우는 조용필, Rock의 대부 신중현, 최헌 등이었다.
사실 80년대 이후 90년대에는 트로트가 대중음악을 주류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80년대의 심수봉, 김수희, 주현미, 문희옥, 현철, 설운도, 태진아 등 트로트 명맥을 이어갈수 있는
걸출한 스타들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트로트는 하나의 리듬이나 장르가 아닌
성인음악(Adult Contemporary)의 카테고리로 자리잡는데 만족해야 했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랩과 힙합, R&B, 발라드, 댄스 음악이 한국 가요계를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트로트는 더욱 침체기를 맞게 되었는데 2004년 장윤정이 '어머나'로 신세대 트로트 붐을 일으키면서
트로트는 중장년 층의 전유물이 아닌 하나의 대중음악 분야로서 다시 전면에 서게 된다.
2005년 박상철의 '무조건', 2006년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2009년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등이 트로트의 르네상스를 이끄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90년대 H.O.T와 젝스키스 팬덤보다 더 치열했던 70년대 남진, 나훈아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았던 트로트의 시대가
2020년대에 부활했다. 그것도 특정 세대, 계층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고 음악적 장르의 형태도 정통 트로트부터
Rock 스타일, 랩 힙합스타일, 심지어 EDM까지 믹스된 퓨전 트로트의 형태로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계의 주류에 자리를 잡듯이
한국의 트로트도 소수의 문화가 아닌 새로운 한류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게 될 날을 머지 않은 미래에
보게 될지도 모르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