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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신화를 일궈낸 곡은 많다. 그러나 이 용어가 정착된 건 2010년대 초반 이엑스아이디(EXID)의 ‘위아래’와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뒤늦게 주목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렇다면 팝에서는 어떤 곡이 대표적인 역주행 사례로 손꼽힐까. 이 노래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라디오헤드의 ‘Creep’(1992)이다.
왼쪽부터 `EXID-위아래` 와 `크레용팝-빠빠빠` 활동 당시 이미지
‘Creep’을 모르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 나이가 어린 경우가 아니라면 어디선가 들어봤을 확률 거의 100퍼센트다. 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reep’은 발매하자마자 주목 받았던 노래가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Creep’이 세상에 던져진 때는 정확히 1992년 9월 21일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영국 차트 순위는 형편없었다. 78위, 누가 봐도 초라한 성적표였다. 심지어 이 곡은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BBC 라디오 선곡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BBC를 외국 방송국이라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개방적일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966년 BBC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팝 음악 트는 시간을 하루 45분 이하로 제한했다. 이 외에도 BBC에게 물 먹은 곡은 셀 수 없이 많다. 잊지 말자. BBC는 공영방송이다. 지켜야 할 규칙이 많은 곳이다.
당시만 해도 라디오의 파워는 막강했다. 라디오에서 곡이 나오질 않는데 히트할 리 없었다. 뭐로 봐도 절망적이었던 그때 구원자가 되어준 건 바다 건너 미국 시장이었다. ‘Creep’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34위에 오르며 히트곡 기준인 Top 40 안에 들었고, 모던 록 차트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1994년 미국 프로모션 이미지에 싣기 위해 촬영되었던 사진
이렇게 ‘Creep’이 미국에서 터진 건 음악의 지향이 딱 들어맞은 덕이 컸다. 가끔 라디오헤드와 ‘Creep’을 브릿팝으로 정의하는 기사를 봤다. 아니다. 브릿팝 아니다. 요약하면 ‘Creep’은 영국 아닌 미국, 즉 강렬한 그런지/얼터너티브의 잔향이 짙게 묻어난 곡이다. "지직"하면서 청각에 수직으로 내리꽂듯 연주되는 디스토션 기타부터가 그런지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에 따르면 “너무 노래가 소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뭔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뭐랄까. “에라.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도리어 이게 매력을 더하면서 세계적인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하긴 ‘Creep’이 글로벌한 인지도를 획득한 이후 한국에서도 일렉트릭도 아닌 어쿠스틱 기타에 대고 되지도 않을 “지직” 흉내 낸 사람 부지기수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청산하고 싶은 과거다.
가사를 한번 살펴본다.
"넌 천사 같아/ 네 피부는 날 울게 만들지/ 넌 아름다운 세상에서 깃털처럼 떠다니지/ 난 내가 특별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네가 정말 특별하니까/ 하지만 난 지질한 놈이야/ 괴짜일 뿐이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보컬 톰 요크(Thom Yorke)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10대 시절 짝사랑에 빠졌지만 내성적인 성격,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다가설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톰 요크는 눈꺼풀에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 그의 눈을 두고 "도롱뇽 같다"며 놀린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예민했던 그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와 ‘요크(Thom Yorke)’
곡을 살펴보면 도입부의 아르페지오 연주, 마지막에 위치한 코러스, 조니 그린우드의 “지직” 파워코드를 제외하면 코드는 G-B-C-Cm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반복된다. 한데 멤버들 중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이 홀리스(The Hollies)의 ‘The Air That I Breathe’와 좀 비슷하다고 지적했고, 이후 전체 32마디 중 브리지 구간에 조금 변화를 줬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유사 판정을 받아 크레디트에 홀리스의 멤버인 앨버트 하몬드(Albert Hammond), 마이크 헤이즐우드(Mike Hazlewood)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Radiohead-Creep’의 도입부와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의 기타 연결구
톰 요크는 이 곡을 다음처럼 회상한다. “조니가 곡을 망치려고 했어요. 마치 손목을 긋는 것 같은 연주였죠. 그런데 그게 곡을 살렸어요. 이게 핵심입니다. 우리가 무대에서 하는 모든 행동에는 스스로를 망친다는 윤리 같은 게 담겨있었으니까요.”
오해가 있다. 라디오헤드는 ‘Creep’ 절대 안 부른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가끔 라이브에서 부른다. 심지어 “이 곡 사실 좋아해요.”라고 뜬금포 고백을 한 뒤에 라이브한 적도 있다. 라디오헤드가 라이브 무조건 안 하는 곡은 기실 따로 있다. 2집 『The Bends』(1995)의 수록곡 ‘High & Dry’다. 이 곡,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음반사의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싱글 발매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이후 『In Rainbows』(2007)에서 음반사 없이 자체 발매를 결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왼쪽부터 `EXID-위아래` 와 `크레용팝-빠빠빠` 활동 당시 이미지
‘Creep’을 모르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 나이가 어린 경우가 아니라면 어디선가 들어봤을 확률 거의 100퍼센트다. 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reep’은 발매하자마자 주목 받았던 노래가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Creep’이 세상에 던져진 때는 정확히 1992년 9월 21일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영국 차트 순위는 형편없었다. 78위, 누가 봐도 초라한 성적표였다. 심지어 이 곡은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BBC 라디오 선곡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BBC를 외국 방송국이라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개방적일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966년 BBC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팝 음악 트는 시간을 하루 45분 이하로 제한했다. 이 외에도 BBC에게 물 먹은 곡은 셀 수 없이 많다. 잊지 말자. BBC는 공영방송이다. 지켜야 할 규칙이 많은 곳이다.
당시만 해도 라디오의 파워는 막강했다. 라디오에서 곡이 나오질 않는데 히트할 리 없었다. 뭐로 봐도 절망적이었던 그때 구원자가 되어준 건 바다 건너 미국 시장이었다. ‘Creep’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34위에 오르며 히트곡 기준인 Top 40 안에 들었고, 모던 록 차트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1994년 미국 프로모션 이미지에 싣기 위해 촬영되었던 사진
이렇게 ‘Creep’이 미국에서 터진 건 음악의 지향이 딱 들어맞은 덕이 컸다. 가끔 라디오헤드와 ‘Creep’을 브릿팝으로 정의하는 기사를 봤다. 아니다. 브릿팝 아니다. 요약하면 ‘Creep’은 영국 아닌 미국, 즉 강렬한 그런지/얼터너티브의 잔향이 짙게 묻어난 곡이다. "지직"하면서 청각에 수직으로 내리꽂듯 연주되는 디스토션 기타부터가 그런지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에 따르면 “너무 노래가 소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뭔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뭐랄까. “에라.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도리어 이게 매력을 더하면서 세계적인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하긴 ‘Creep’이 글로벌한 인지도를 획득한 이후 한국에서도 일렉트릭도 아닌 어쿠스틱 기타에 대고 되지도 않을 “지직” 흉내 낸 사람 부지기수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청산하고 싶은 과거다.
가사를 한번 살펴본다.
"넌 천사 같아/ 네 피부는 날 울게 만들지/ 넌 아름다운 세상에서 깃털처럼 떠다니지/ 난 내가 특별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네가 정말 특별하니까/ 하지만 난 지질한 놈이야/ 괴짜일 뿐이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보컬 톰 요크(Thom Yorke)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10대 시절 짝사랑에 빠졌지만 내성적인 성격,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다가설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톰 요크는 눈꺼풀에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 그의 눈을 두고 "도롱뇽 같다"며 놀린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예민했던 그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와 ‘요크(Thom Yorke)’
곡을 살펴보면 도입부의 아르페지오 연주, 마지막에 위치한 코러스, 조니 그린우드의 “지직” 파워코드를 제외하면 코드는 G-B-C-Cm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반복된다. 한데 멤버들 중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이 홀리스(The Hollies)의 ‘The Air That I Breathe’와 좀 비슷하다고 지적했고, 이후 전체 32마디 중 브리지 구간에 조금 변화를 줬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유사 판정을 받아 크레디트에 홀리스의 멤버인 앨버트 하몬드(Albert Hammond), 마이크 헤이즐우드(Mike Hazlewood)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Radiohead-Creep’의 도입부와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의 기타 연결구
톰 요크는 이 곡을 다음처럼 회상한다. “조니가 곡을 망치려고 했어요. 마치 손목을 긋는 것 같은 연주였죠. 그런데 그게 곡을 살렸어요. 이게 핵심입니다. 우리가 무대에서 하는 모든 행동에는 스스로를 망친다는 윤리 같은 게 담겨있었으니까요.”
오해가 있다. 라디오헤드는 ‘Creep’ 절대 안 부른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가끔 라이브에서 부른다. 심지어 “이 곡 사실 좋아해요.”라고 뜬금포 고백을 한 뒤에 라이브한 적도 있다. 라디오헤드가 라이브 무조건 안 하는 곡은 기실 따로 있다. 2집 『The Bends』(1995)의 수록곡 ‘High & Dry’다. 이 곡,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음반사의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싱글 발매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이후 『In Rainbows』(2007)에서 음반사 없이 자체 발매를 결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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