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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이 있었다. 디스코가 있었고, 트로트가 있었다. 포크와 댄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록이 있었다. 과연 그랬다.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꽃핀 장르 다양성의 시대였다. 여러 가수와 밴드가 등장해 다채로운 장르 팔레트를 대중에게 선사했다. 그 중심을 장악한 전설을 대중은 지금도 기억한다.
1980년대가 장르적으로 다양했다는 점은 다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요즘 말로 하면 인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덜한 대신 주류 음악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언더그라운드를 상징하는 뮤지션과 밴드는 여럿이다. 그러나 딱 하나만을 꼽아야 한다면 이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들국화다.
41년이다. 2026년은 들국화의 역사적인 1집 『들국화』가 발매된 지 41년 되는 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앨범은 한국 록 역사를 떠나 대중음악 전체에서 1위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단지 비평적 성취만은 아니다. 『들국화』는 당시 웬만한 메인스트림 뮤지션의 음반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기본적으로 들국화는 라이브 지향 밴드였다. 1985년 공개된 1집에 콘서트 할인권과 전국 순회 공연 일정표를 끼워 넣을 정도로 라이브를 중요시했다. 나는 1977년생이다. 당시 들국화의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었다. 대신 내 주변에는 1980년대 중반 그들의 라이브를 봤던 사람이 몇 있다. 공통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들국화 1집을 ‘록’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보면 포크 성향의 노래가 오히려 많다.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축복합니다’ 등이 증명한다. 그러나 들국화의 진면목은 역시 ‘그것만이 내 세상’,‘행진’ 같은 강렬한 밴드 음악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연장의 천장마저 꿰뚫고 치솟을 듯한 전인권의 절창은 들국화라는 밴드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굳이 한 곡을 꼽자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핵심은 후렴구에서의 대담한 전환에 있다. “하지만 후횐 없어”라고 외치는 그 부분이다. F메이저 키와 안정적인 Ⅰ-Ⅳ-Ⅴ-vi진행을 기반으로 담담하고 평온하게 진행되던 곡은 후렴구로 넘어가면서 전인권의 폭발적 성량과 함께 고음역대의 장조 화성을 다이내믹하게 끌어올린다.
전인권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는 도입부에서 내레이션을 읊는 것처럼 절제된 포크 감성을 전달하다가 절정부에 진입하자마자 록 샤우팅을 밀어붙인다. 이를 통해 곡이 뿜어내는 청춘의 불안과 고집스러운 자기 신념을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한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그는 한국 록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월계관을 아무리 갖다 바쳐도 부족할 지경이다. 다시 이 곡을 듣는다. 2026년에도 그 감동에는 변함이 없다.
1집 이후의 스토리는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다. 2집은 기대에 못 미쳤고,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다. 잠깐의 재결합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활동도 1집의 거대한 존재감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바꿔 말해 들국화 1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슴 벅찬 ‘행진’을 들으면서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5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이 곡의 라이브 중 내가 꼽는 최고는 2014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버전이다. 꼭 감상해 보기 바란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
1980년대가 장르적으로 다양했다는 점은 다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요즘 말로 하면 인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덜한 대신 주류 음악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언더그라운드를 상징하는 뮤지션과 밴드는 여럿이다. 그러나 딱 하나만을 꼽아야 한다면 이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들국화다.
41년이다. 2026년은 들국화의 역사적인 1집 『들국화』가 발매된 지 41년 되는 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앨범은 한국 록 역사를 떠나 대중음악 전체에서 1위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단지 비평적 성취만은 아니다. 『들국화』는 당시 웬만한 메인스트림 뮤지션의 음반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기본적으로 들국화는 라이브 지향 밴드였다. 1985년 공개된 1집에 콘서트 할인권과 전국 순회 공연 일정표를 끼워 넣을 정도로 라이브를 중요시했다. 나는 1977년생이다. 당시 들국화의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었다. 대신 내 주변에는 1980년대 중반 그들의 라이브를 봤던 사람이 몇 있다. 공통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들국화 1집을 ‘록’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보면 포크 성향의 노래가 오히려 많다.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축복합니다’ 등이 증명한다. 그러나 들국화의 진면목은 역시 ‘그것만이 내 세상’,‘행진’ 같은 강렬한 밴드 음악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연장의 천장마저 꿰뚫고 치솟을 듯한 전인권의 절창은 들국화라는 밴드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굳이 한 곡을 꼽자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핵심은 후렴구에서의 대담한 전환에 있다. “하지만 후횐 없어”라고 외치는 그 부분이다. F메이저 키와 안정적인 Ⅰ-Ⅳ-Ⅴ-vi진행을 기반으로 담담하고 평온하게 진행되던 곡은 후렴구로 넘어가면서 전인권의 폭발적 성량과 함께 고음역대의 장조 화성을 다이내믹하게 끌어올린다.
전인권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는 도입부에서 내레이션을 읊는 것처럼 절제된 포크 감성을 전달하다가 절정부에 진입하자마자 록 샤우팅을 밀어붙인다. 이를 통해 곡이 뿜어내는 청춘의 불안과 고집스러운 자기 신념을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한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그는 한국 록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월계관을 아무리 갖다 바쳐도 부족할 지경이다. 다시 이 곡을 듣는다. 2026년에도 그 감동에는 변함이 없다.
1집 이후의 스토리는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다. 2집은 기대에 못 미쳤고,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다. 잠깐의 재결합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활동도 1집의 거대한 존재감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바꿔 말해 들국화 1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슴 벅찬 ‘행진’을 들으면서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5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이 곡의 라이브 중 내가 꼽는 최고는 2014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버전이다. 꼭 감상해 보기 바란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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