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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음악은 언뜻 어울릴 수 없는 단어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음악은 예술로써 삶과 죽음, 희로애락을 함께하지요. 이 점을 생각한다면 전쟁과 음악 사이에도 끈끈한 무언가가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20세기 초, 그러니까 제 1차와 제 2차 세계대전을 살았던 음악가들이야말로 이 점을 고스란히 겪고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음악으로 저항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 』,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세 영화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8곡 중 6번째에 해당하는 왈츠 2번을 배경 음악으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제목이 낯설 수 있지만, 들어보시면 상당히 낯익은 선율에 ‘아, 이 음악!’ 하고 감탄하시는 분도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이 곡을 작곡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초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태어나 활동했습니다. 스탈린에게 음악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소비에트 연방의 영예를 드높이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그렇지 않은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지요. 쇼스타코비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스탈린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했고 자연스럽게 활동에도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껏 곡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하던 음악원에서도 해임을 당하고 말았죠. 목숨 또한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고요. 그럼에도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죽는 날까지,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새로운 작품을 썼고 실험 정신도 강했습니다. 쇼프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서방세계라 부르며 혐오했던 유럽과 미국의 음악, 특히 재즈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쓴 곡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왈츠 2번입니다.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던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와 왈츠 2번 악보
한편 전장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음악가도 있습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 해당하는 오데사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냥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아샤 하이페츠와 함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습니다. 하이페츠가 정확한 기술과 절제된 기교로 유명했다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감성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녹음된 오이스트라흐의 바흐의 샤콘느 연주 실황과 하이페츠의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차이를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이스트라흐가 대단했던 건 천재성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장을 누비며 음악으로 위로를 건넬 줄 알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소련이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부상병과 실향민에게 잠시나마 고통과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을 안겨 주고자 직접 전장을 누볐습니다. 사지로 내몰린 절박한 상황을 달래주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줄 알았던 음악인이었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그가 연주한 음악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전장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보냈기 때문이겠지요. 기록된 음색 하나하나가 모두 따스하고 소중한 이유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최근 국제 정세가 많이 어지럽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연일 민간인 사상자 소식이 들려옵니다. 금방이라도 큰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두려운 목소리와 감정들이 일렁이고요. 이 가운데 보통 사람인 우리,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이스트라흐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겨주고,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창작을 이어갔음을 돌이켜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각각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태생임을 생각한다면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한 번쯤 전쟁이 가져온 비극과, 전쟁이 억압한 자유에 저항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우리가 먼 땅에 있지만 전쟁에 속해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평화를 기도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20세기 초, 그러니까 제 1차와 제 2차 세계대전을 살았던 음악가들이야말로 이 점을 고스란히 겪고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음악으로 저항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 』,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세 영화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8곡 중 6번째에 해당하는 왈츠 2번을 배경 음악으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제목이 낯설 수 있지만, 들어보시면 상당히 낯익은 선율에 ‘아, 이 음악!’ 하고 감탄하시는 분도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 『텔 미 썸딩』, 『번지점프를 하다』
이 곡을 작곡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초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에서 태어나 활동했습니다. 스탈린에게 음악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소비에트 연방의 영예를 드높이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그렇지 않은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지요. 쇼스타코비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스탈린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했고 자연스럽게 활동에도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껏 곡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하던 음악원에서도 해임을 당하고 말았죠. 목숨 또한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고요. 그럼에도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죽는 날까지,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새로운 작품을 썼고 실험 정신도 강했습니다. 쇼프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서방세계라 부르며 혐오했던 유럽과 미국의 음악, 특히 재즈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쓴 곡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왈츠 2번입니다.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던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와 왈츠 2번 악보
한편 전장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음악가도 있습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 해당하는 오데사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냥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아샤 하이페츠와 함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습니다. 하이페츠가 정확한 기술과 절제된 기교로 유명했다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감성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녹음된 오이스트라흐의 바흐의 샤콘느 연주 실황과 하이페츠의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차이를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이스트라흐가 대단했던 건 천재성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장을 누비며 음악으로 위로를 건넬 줄 알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소련이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부상병과 실향민에게 잠시나마 고통과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을 안겨 주고자 직접 전장을 누볐습니다. 사지로 내몰린 절박한 상황을 달래주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줄 알았던 음악인이었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그가 연주한 음악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전장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보냈기 때문이겠지요. 기록된 음색 하나하나가 모두 따스하고 소중한 이유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최근 국제 정세가 많이 어지럽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연일 민간인 사상자 소식이 들려옵니다. 금방이라도 큰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두려운 목소리와 감정들이 일렁이고요. 이 가운데 보통 사람인 우리,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이스트라흐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겨주고,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창작을 이어갔음을 돌이켜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각각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태생임을 생각한다면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한 번쯤 전쟁이 가져온 비극과, 전쟁이 억압한 자유에 저항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우리가 먼 땅에 있지만 전쟁에 속해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평화를 기도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